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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레이] 돌아오지 않는 해병 - 한국영상자료원 블루레이 시리즈 33 (12월7일 예정)
The Marines Who Never Returned
제조회사 : 한국영상자료원
소비자가 : 27,500
판매가격 : 25,000원
수량 EA
 
원산지 : 대한민국
배송조건 : (조건)
제품출시일 : 2023/12/07
       

본 상품은 차세대 미디어 블루레이 디스크입니다.
기존의 DVD-Player에서는 재생이 되지 않으며, 전용 플레이어에서만 재생되오니 이용에 참고해 주십시오.
한국영상자료원 블루레이 시리즈 33 
Title Info
◆ 제  : [블루레이] 돌아오지 않는 해병 - 한국영상자료원 블루레이 시리즈 33           
◆ 원  제 : The Marines Who Never Returned
◆ 제  작 : 한국영상자료원
◆ 장  르 : 액션, 드라마
◆ 감  독 : 이만희
◆ 주  연 : 장동휘, 최무룡, 구봉서, 이대엽
◆ 등  급 :
15세이상관람가
◆ 시  간 : 본편 110분
◆ 화  면 : 1080P FULL HD 16:9
◆ 음  향 : Korean LPCM Mono
◆ 자  막 : 한국어, 영어, 일어
◆ 코  드 : A
◆ 출  시 : 2023.12.07
Synopsis
Issue Point

▶ <돌아오지 않는 해병>(이만희, 1963) 블루레이 출시
▶ 17분의 미공개 영상을 수록한 희귀본

한국영상자료원이 한국 전쟁영화의 걸작이자 한국영화사의 대표작 중 하나인 <돌아오지 않는 해병>(이만희, 1963)을 블루레이로 출시한다. 한국영상자료원이 기획하고 블루키노가 제작한 33번째 블루레이 타이틀이다.

반전영화로서 전쟁영화
<돌아오지 않는 해병>은 기성세대에게는 매우 익숙한 영화이다. 6.25나 현충일에 단골로 방영된 영화였기 때문이다. 그만큼 한국전쟁영화를 대표하는 작품이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만희는 1963년 <돌아오지 않는 해병>부터 1974년 <들국화는 피었는데>까지 11편에 달하는 전쟁영화를 만들었다. 전체 연출작 51편 중 11편이라는 비중도 낮지 않지만, 필름이 남아있는 영화로 따지면 26편 중 8편이 전쟁영화다. 대략 30%가 넘는다. 이 정도면 전쟁영화 전문 감독이라 불릴 만도 하다. 당시 정권은 전쟁영화에 반공 메시지를 강조하길 원했지만, 이만희는 그보다는 전쟁 자체가 가진 비극적 본질과 그 폭력성, 그리고 그 극한상황에서 인간의 모습을 담고자 했다. 그의 전쟁영화가 언제나 반전영화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 영화도 예외가 아니어서, 표면적으로는 반공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지만, 그 저변에는 전쟁 자체를 비판하는 메시지가 흐르고 있음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오락성과 비극성의 탁월한 조율
<돌아오지 않는 해병>이 이전 한국전쟁영화와 뚜렷이 다른 점은 한국전쟁을 오락의 대상으로 재현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종전 후 10년이라는 세월이 지나며 국민들이 한국전쟁을 일정한 거리를 두고 즐길 수 있게 되었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렇다고 이 영화가 한국전쟁을 가볍게 다루고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라 할 수 있다. 해병대의 대규모 지원으로 가능했던 첫 인천상륙작전 시퀀스를 비롯한 전투장면의 스펙타클은 오늘날 전쟁영화에서도 구현하기 어려운 시각적 즐거움을 주지만, 다른 한편 이는 전쟁이 가지는 폭력성을 리얼하게 체험토록 한다. 또한 영화의 사실상 혹은 숨은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마스코트 소녀 영희(전영선)와 구봉서가 맡은 해병 캐릭터는 영화 전반의 톤을 비교적 밝고 가볍게 만들고 있지만, 이 둘은 전쟁의 비극적 아이러니를 강력하게 전달하는 인물들이기도 하다. 요컨대 이 영화는 한국전쟁에 대한 체험적 재현과 전쟁의 의미에 대한 고찰, 정서적 톤과 오락성이 탁월하게 조율되고 통합된 영화라 할 수 있다. 이는 (대중)영화 감독으로서 이만희의 놀라운 재능을 보여주는 측면이다.

17분의 미공개 영상 수록
이번 블루레이의 가치는 무엇보다 그간 한국판에서 볼 수 없었던 17분의 미공개 영상이 서플먼트로 수록되었
다는데 있다. 이 미공개분은 한국영상자료원이 뉴질랜드의 한 아카이브에서 2017년에 입수한 <돌아오지 않는
해병>의 미국 수출본 <Marine Battle Ground>에서 발견된 것이다. 이 버전에는 성장하여 베트남전에 참전한 영희가 종군기자에게 자신의 한국전쟁 경험을 증언하는 인트로와 아웃트로 등이 새롭게 촬영되어 수록되어 있어 흥미롭다. 이는 당대 미국사회를 뜨겁게 달구었던 베트남전이라는 이슈에 편승하려는 배급사의 전략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어쨌든 해외판 85분의 러닝타임 중 67분가량이 기존 영화의 재편집분인데, 그 중 17분이 한국 원판에 없던 내용이라는 사실이 해외 버전의 발굴 이후 밝혀졌다. 이 미공개 분 중 가장 많은 분량은 영희가 대대장으로부터 부대원으로 승인받는 부분(3분 49초가량)이며, 럭키클럽의 종업원들이 가게를 열 준비를 하는 부분, 그 외 각 전투장면의 미공개 부분 6분 등이 수록되어 있다. 안타깝게도 이 미공개분의 출처는 아직 확인하지 못한 상태이다.

아주 특별한 코멘터리와 소책자, 고화질로 복원된 마스터
이 영화의 코멘터리에는 영화평론가 허남웅과 한국영상자료원 선임연구원 조준형이 코멘터리로 참여했다. 또한
이전 DVD에 수록되었던 영화감독 최동훈과 영화평론가 주성철의 코멘터리가 재수록되었다. 이 두 편의 코멘
터리, 그리고 소책자에 수록된 감독론과 작품 리뷰는 영화를 이해하고 감상하기 위한 친절한 가이드가 될 것이다. 또한 이 소책자에는 이 영화의 미국 수출버전을 직접 수집하고, 연구한 한국영상자료원 프로그래머 최영진의 원고가 수록되어 있다. 당시 이 영화의 미국 버전이 어떤 환경에서 어떻게 만들어지고 미국을 비롯한 해외에서 어떻게 배급되고 상영되었는지에 대한 설명, 그리고 34개가 넘는 미공개분의 씬과 시간까지를 꼼꼼하게 조사하여 수록한 매우 흥미로운 원고다. 한편 이 블루레이의 영상은 한국영상자료원이 2022년 4K로 복원한 결과물을 소스로 하였다. 초고화질로 복원된 버전을 통해 이 영화의 가치를 더욱 뚜렷이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감독 이만희
이만희는 1931년 10월 서울에서 태어났다. 1950년 11월, 육군에 입대하여 육군본부에서 암호병 등으로 근무하다 1954년 7월경, 4년에 가까운 군생활을 마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전쟁 기간을 온전히 군에 투신한 이력은 전쟁영화 전문 감독으로서 이만희를 만든 결정적 경험이었을 뿐 아니라, 나아가 전쟁 그 자체를 고민하는 시간이었을지도 모른다. 제대 후 그는 안종화, 박구, 김명제 감독 등의 조감독 생활을 5-6년 정도 경험했다. 데뷔작은 1961년 1월에 개봉한 <주마등>이었다. 이후 그는 1975년 4월 유작인 <삼포가는 길> 편집 중 사망할 때까지 약 14년 간 51편의 작품을 연출했다. 2000년대 중반까지 이만희는 한국영화사의 중요한 감독 중 하나로 인정받기는 했지만, <만추>(1966), <돌아오지 않는 해병>(1963), <삼포가는 길>(1975) 등 몇몇 대표작들로만 알려졌을 뿐이다. 2000년대 중반 이후 부산국제영화제의 회고전, 한국영상자료원의 전작전을 통해 영화세계의 전모가 제대로 소개되기 시작했고, <검은 머리>(1964), <물레방아>(1966), <휴일>(1968) 등의 영화가 새롭게 발굴되면서, 이만희는 국내외를 막론하고 한국영화사를 대표하는 감독의 지위를 획득했다

소책자 Booklet
- 소책자 (한글, 영문) BOOKLET


줄거리

한국전쟁 중 한 해병부대가 인천상륙작전에 참가한다. 분대장(장동휘)이 이끄는 분대원들은 폐허가 된 시가로 들어가 북한군과 총격전을 벌이던 중 눈앞에서 북한군의 총에 어머니를 잃은 소녀 영희(전영선)를 구출하고, 건물 안의 학살된 양민들 속에서 여동생의 시체를 발견한 구일병(이대엽)은 절규한다. 서울을 탈환한 후 부대는 북진하고, 분대원들은 고아가 된 소녀 영희(전영선)를 군대 자루 속에 몰래 넣어 다닌다. 어느 날 최해병(최무룡)이 전속되자, 구일병은 그의 형이 여동생을 죽였다며 주먹다짐을 한다. 영희가 부대에 정식으로 소속되고, 분대원들은 기마전에서 승리한 상금으로 막걸리 파티를 한다. 크리스마스를 앞 둔 어느 날 외박을 나가 양공주들과 시간을 보내고 있는 분대원들에게 부대 복귀 명령이 내려지고 분대원들은 중공군의 인해전술에 맞서야 하는 최전선에 투입된다. 분대원들은 영희가 보낸 편지를 읽고, 분대장은 최후의 일전을 앞둔 대원들을 격려한다. 인해전술을 펼치며 밀려오는 중공군에 분대원들이 하나 둘 죽고, 통신병인 김해병(김운하)이 구원병을 요청하러 간 사이 분대원들은 남은 중공군과 전투를 벌인다. 전투가 끝난 후 살아남은 분대장과 최해병은 구일병을 비롯한 전우들의 주검 앞에서 눈물을 흘린다.

Special Features

▶ 음성해설 Commentary
조준형(한국영상자료원), 허남웅(평론가)
Cho Jun-hyoung(Korean Film Archive) Huh Nam-woong(Film Critic)

최동훈(영화감독), 주성철(기자) - DVD Commentary Ver.
Commentary by Choi Dong-hoon (Film Director), Ju Sung-chul (Journalist)

▶ 돌아오지 않는 해병 미공개 컷(Unreleased Footage)

▶ 복원 전후 영상 Digital Restoration : Before & After

▶ 이미지 자료모음 Image Gallery

Special Contents

■ 장동휘 (출연)

1920년 인천에서 태어나 인천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극장에서 본 악극에 매료되어 1939년 악극단 컬럼비아에 입단했고(씨네21), 그 해 소속을 옮겨 만주의 악극단 칠성좌에서 무대 데뷔한다(영화백과). 한국 전쟁 시, 입대하여 일선위문대 활동을 했고, 전쟁 이후에는 연극단에서 활동하다 김소동 감독의 권유로 <아리랑>(1957)에 출연하며 영화 배우로 입문하게 된다. 나운규의 동명 영화를 리메이크한 영화로 양복을 입은 사람만 보면 달려드는 미친 영진의 역할을 연기했으며, 이 데뷔작에서 이미 '뛰어나게 좋'은 연기(한국일보), '금년 영화계의 중요한 소득 중 하나'(조선일보)라는 평가를 받는다. 이후 <노다지>(1961), <돌아오지 않는 해병>(1963), <검은 머리>(1964) 등의 액션, 전쟁 영화에서의 선 굵은 남성이지만, 그 이면에 감추어진 상처 받은 모습이 공존하는 1960~1970년대 한국 영화의 대표적인 액션 배우였다. 1980년대의 긴 휴식을 마치고 돌아온 <만무방>(1994)에서의 호연으로 아태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수상하기도 한다. 2005년 4월 2일 세상을 떠난다.

■ 최무룡 (출연)

갖가지 풍파와 스캔들 등 영화만큼이나 드라마틱한 인생을 살았던 영화배우로 영화인협회 연기분과 위원장과 영화배우협회장 등을 지냈으며 제13대 국회의원을 역임했다.

1928년 경기도 파주군 문산에서 선주이면서 곡물 도매업을 하던 부유한 집안의 외아들로 태어났다. 무진년에 태어나 용처럼 살라는 뜻에서 무룡(戊龍)이란 이름을 얻게 된 그는 뛰어난 용모 덕분에 동네사람들의 귀여움을 독차지하며 자랐다고 전한다. 개성상업학교를 나와 한국은행에서 근무했던 그는 해방되던 해 문맹퇴치를 위한 소인극을 하면서 연극에 매료돼 사표를 던지고 경성법전(현 중앙대 법학과)에 진학하면서 본격적으로 연극무대에 서기 시작했다.
1949년 셰익스피어의 연극 <햄릿>에서 주연을 맡은 후 51년 채만식의 소설을 영화화한 <탁류>에 출연, 영화배우로서 발을 내디뎠다. 이후 <육체의 길> <꿈은 사라지고> <장마루촌의 이발사> <오발탄> <5인의 해병> <빨간 마후라> <남과 북> 등 500여편에 출연하면서 인생 최고의 전성기를 누렸다.

연기에 몰입하던 초창기까지 여자에 별 관심이 없었던 그는 당시 ‘눈물의 여왕’이라고 칭송받던 여배우 전옥의 딸 강효실씨를 만나면서 첫사랑을 싹틔웠다. 전옥의 반대를 무릅쓰고 52년 부산 해군함정서 결혼식을 올렸을 때 그의 나이 23세, 신부 19세였다. 딸 셋과 아들(최민수)을 두기까지 두 사람은 무척 행복한 결혼생활을 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1962년 해외로케 때 생긴 동료 여배우 김지미와의 스캔들로 이들 부부는 이혼을 했다. 자존심 강한 장모 전옥씨의 간통죄 고소로 김지미는 모든 재산을 위자료로 내놓아야 했고 최씨는 가족과 헤어졌다. 이 때도 최씨의 인기는 세인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는 사생활과 관계없이 절정에 달했다.

김지미씨와의 사이에 1남 1녀(아들은 어릴 때 사망했고 딸 밍크(최영숙)가 있다)를 두고 단란하게 살았던 최씨는 무리하게 영화제작에 뛰어들어 막대한 빚을 졌고, 할 수 없이 김씨와 이혼을 해야 했다. 당시 그는 “사랑하기 때문에 헤어진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이후에도 영화빚 때문에 고생하던 그는 조력자로 나서준 여성들과 끊임없이 염문설을 뿌렸으며, 한동안 활동이 뜸하던 1988년에는 13대 총선 때 당시 김종필 공화당 총재의 추천으로 파주에서 출마, 국회의원으로 당선되기도 했다. 하지만 1994년 경기도 성남시 분당의 택지 불하를 미끼로 22억원을 가로챈 혐의(사기)로 구속되기도 하는 등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기도 했다.

1999년 11월 11일, 경기도 부천 자택에서 갑자기 심장마비를 일으켜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별세했다. 향년 71세. 미망인은 차금자씨. 그의 장례는 영화인장으로 치러졌고 한때 아내였으며 영화인협회 이사장으로 있는 김지미씨가 장례 절차를 총괄했다.

제작자 또는 공급자한국영상자료원
이용조건, 이용기간15세이상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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